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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로의 여행 계산성당 둘러보기[대구여행/근대로의여행/근대문화골목]

arieyo 2013. 12. 6. 06:00

한국관광의 별과 대한민국 대표 관광명소 100선에 선정된

대구 중구의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 5코스 중 2코스에 도전했다.

 

골목투어 2코스의 셋째 구간인 계산성당은

1899년 로베르 신부의 설계로 처음 지어졌고 십자가 형태의 2층 구조에 기와를 올린 한옥이었다.

하지만 1900년 화재로 전소되어 프와넬 신부가 다시 설당을 설계하였는데

당시 중국인들이 건축에 참여 하기도 했으며 1911년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계산성당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유명하며

100년이 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의 전동성당과 함께 우뚝 솟은 쌍탑이 특징인데

고풍스러운 내부와 아름다운 외관 덕분에 유명 인사들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이다.

성당 내부에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한복을 입으 사람들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성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1984년 5월 5일엔 교황요한 바오로2세가 방문하기도 하였고 김수환추기경은 사제 서품을 받기도 하였으며

천재화가 이인성의 작품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한  계산성당이다.

 

 

 

 

 

 

11월 마지막 날 대구 중구 골목투어인 근대로의 여행을 마친 후였기에

서상돈 재산 담보 8천냥 빌려 지은 '계산성당' 이란

기사의 제목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서상돈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대구로 와 보부상을 시작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건 김수환 추기경의 외조부 서용서 등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그 덕분에 서상돈은 30대에 거상(巨商)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서상돈은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평신도 지도자로서 평생을 전교활동과 구휼사업에 힘썼다.

또한 대구가 남방 교구 중심지로 결정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서상돈은 한옥 성당이 불타자 새 성당을 짓기 위한 공사 자금을 마련하고자 자신의 전 재산을 담보로 8천냥을 빌렸다.

이 성당이 영남지최초로 서양식으로 지어진 계산성당이다. 이후 계산성당은 남방 교구를 대구에 설립하는 이유가 됐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2013.09.06

 

 

 

1950년 12월 12일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 ......."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을 광경이 펼쳐지는 성당 내부의 모습이다.

들어서며 괜시리 미소를 지어 본다,

 

 

 

성당에 들어서면서 뒤돌아 윗쪽을 올려다보면

천상의 소리를 간직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파이프오르간의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는 성가대의 모습이 순간 눈앞을 스친다.

 

 

 

제대 하단부 중앙 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좌, 우에 두 신부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천재화가 이인성이 화폭에 담았던 계상성당의 감나무는 "이인성나무"로 불리우며

오늘도 유명세를 안고 카메라세례를 받는다.

 

 

 

계산성당을  마주하고  대구제일교회의 쌍탑이 바라보인다.

근대문화골목에 포함된 제일교회는 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 남성정이 모태가 되는

개신교 교회라고 하는데  골목투어때 함께 돌아볼 곳이다.

 

 

 

붉은 벽돌과 회색벽돌로 쌓아 올린 계산성당(사적290호)과

 기독교인 제일교회를 한 번에 담아 인증샷.

 

 

 

 

청라언덕에서 3.1 만세운동길 90계단을 내려오면 길 바닥에

대구의 역사를 연도별로 한 눈에 정리를 해 놓아 좌 우로 맞추어 보는 재미도 있다.

1950년에 박정희, 육영수 계산성당에서 결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