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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장군유적지[대구여행/신숭겸장군유적지/대구팔공산올레2코스]

arieyo 2013. 4. 10. 06:00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평산신씨의 시조인 신숭겸장군은 

 절대위기에 처한 왕건을 숨기고 왕을 가장해 싸우다 전사하여  고려를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며

후세에 충의와 절개의 사표가 된 분으로 신숭겸장군유적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 1호가 되었는데

소원만디로 가는 대구올레 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의 신숭겸장군 유적지를 둘러 보았다.

 

 

 

 

후백제군은 왕건의 목숨을 구하고 숨진 신숭겸의 목을 베어 가져갔는데

후에 황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장례식을 치러 주었으며

묘역이 있는 춘천과 태어난 전라도 그리고 전사한 대구의 3곳에서 신숭겸장군을 기린다고 한다.

신숭겸유적지

왕건은 자신을 대신하여 장렬히 전사한 신숭겸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준 후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하고 토지를 내려 이 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1607년(선조 40) 에 없어진 지묘사 자리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서원인 충렬사를 세워 장군을 모셨으며

1672년(현종 13) 에 표충사는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페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

후손들이 재사를 지어 이곳을 지켜 오던 중 1993년에 표충사를 복원하게 되었다.

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개를 추모하여 건립된 상절당~~

?? 표충단 ??

== 서기 927년 후백제 왕 견훤과 왕건이 신숭겸, 김락장군을 대동하고 후백제군과 맞서 싸운 곳이다.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처했을때 신숭겸 장군은 왕건의 옷과 바꾸어 입고 왕으로 가장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곳으로 시신은 강원도 춘춘에 매장 하였다고 한다.

고려때는 지묘사 절을 지어 향사를 모셔 오다가 1607년에 후손 신흠과 외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신숭겸 장군이 돌아가신 이 자리에 단을 쌓아 위왕대사의 정신을 기리게 되었다고 한다.===

 

 

 

 

대구의 시내를 돌다보면 만날수도 있는 이순신장군상처럼 서 있던 신숭겸동상을

말을 타고 용감히 전투에 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장군상을 유적지에서 만났는데

결연한 의지를 담아 용감히 전진하는 듯하여 숙연해진다.

 

 

?? 사안도 ??

 고려태조가 평주 삼탄으로 사냥을 나갔을때 낮참에 기러기 세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태조가 " 누가 저 기러기를 쏘겠는가 "

라고 하자 장절공이 선뜻나서 태조가 명한대로 셋째 기러기 왼쪽날개를 맞혀 떨어뜨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현재의 비는 평산 신씨 충남 화수회에서 기증하였다고 한다.

 

 

 

표충단과 고려장절신공 순절지지비의 모습을 함께 담아 보았다.

 

 

신숭겸 장군의 순절지지비는  신숭겸의 28대손에 의해 세워졌으며

표충재, 표충사 등과 함께 신숭겸 장군 유적지 내에 위치하고 잇으며 매년 한식에 향사를 받든다고 한다.

 

 

?? 신숭겸 장군나무  ??

수령이 약 400년 정도 된 배롱나무로 나라를 위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장렬한 죽음은 천년을 뛰어 넘어 현재까지

모든이의 귀감이 되고 있는  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 신숭겸장군나무 "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는데

장군의 기개를 그대로 간직하고 표충단을 지키고 있는 듯 했다.

 

내삼문인 경의 문을 지나면 표충사를 향하게 된다.

 

 

제비꽃과 물레나물 등 야생화가 피어있어 헌화를 대신 하는 듯 하였다.

 

 

 

 

 

 

신숭겸장군유적지와 근접해있는 김충선선생의 자취를 밟으며 돌아볼수 있는 녹동서원과 한.일 우호관이 근처에 있으며

팔공산올레길2코스가 시작되는 곳이어서 주변과 연계하여 계획을 잡으면 더욱 알찬 여행을 즐길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