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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 백서 토굴의 모습을 볼수있는 배론성지[제천여행/제천에서가볼만한곳/배론성지]

arieyo 2013. 3. 27. 06:48

[제천여행/제천에서가볼만한곳/배론성지]황사영 백서 토굴의 모습을 볼수있는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천주교 성지로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머물며 백서를 쓴곳이며

1855년에는 사제양성을 위한 성요셉신학교가 세워져 1866년까지 신학교육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고

1861년 선종하신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신부님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나간 교우촌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사건과 유적을 간직한 곳이다.

 

배론성지 : http://www.baeron.or.kr/

 

 

 

 

탁사정을 나와 5번 국도변을 달리다 보면 길가에 배론성지 표지석이 보인다.

근처에 있는 줄 알았더니 꼬불꼬불 시골길로 10여분쯤 산쪽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성지가 나온다.

이름하여 배론성지........

 

 

 

산속 골짜기에 이렇게 큰 성지가 자리하리라곤 생각치 못하였다.

배론은 치악산 동남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싸고 있는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마을로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어졌다고 하는데

1866년 병인박해 전의 배론은 6개 마을로

아랫배론, 중땀배론, 웃배로, 점촌배론, 박달나무골, 비득재마을 등 70여호가 있었다고 한다.

 

 

 

미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휠체어에 앉아 간절히 기도 하던 신자의 모습을 보며

가슴 먹먹해짐을 느꼈던 곳이다.

 

 

 

 

 

대성당의 천정은 보통 성당에서 만나는 천정과 확연히 다르다.

배의 밑바닥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듯 했는데 순간 "노아의 방주"가 생각났다.

이 성지 안의 사물과 신자만이 신세계로 향할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염원을 담은 촛불들이 빛을 밝혀 성지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대성당 왼쪽에 마련된 작은 제단은

순교하신 신부님들의 선교활동과 관련된 역사를 알수있는 곳이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소성당이 있는데 한번데 3천여명이 미사를 볼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순교자 최양업(崔良業) 토마스(1821-1861년) 신부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로서, 세례명은 토마스. 양업(良業)은 아명(兒名)이다.

 

 

 

 

납골당 들어서는 입구의 모습으로 최양업신부님을 기리는 조각공원~~

 

 

 

 

 

 

 

1775년 창원 황씨 가문에서 태어난 황사영은 16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정조대왕이 그를 불러 치하한 후 " 네가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네게 일을 시키고 싶다" 고

하셨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황사영은 임금님이 만지신 손목을 붉은 비단으로 감고 다녔다고 한다.

 

그 후 황사영은 정약용이 맏형인 정약현의 딸 명련과 결혼을 하고

결혼한 해에 천주교에 입교하여 알렉시오의 세례명을 받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뒤 체포령이 내려 망명의 길을 떠나 제천 배론 교우촌으로 들어와 토굴을 파고 은거하게 된다.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였다는 소식과 다른 박해의 소식을 들은 황사영은

북경주교에게 박해의 소식을 알리고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백서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황사영은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고 그해 대역부도의 죄로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을 당한다.

 

 

 

 

 

성 요셉 배론 신학교( 충북 지방문화제 제118호)

한국 최초의 신학교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2003년에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5월쯤에는 골짜기가 온통 꽃세상으로 바뀐다고 한다.

방주가 떠내려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았을까?

발길을 돌리면서 총천연색으로 뒤덮여있는 배론을 상상해보며 기약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