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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여행] 1400년 전의 찬란한 유산을 찾아 떠난 발길 미륵사지에 머물다~

arieyo 2012. 2. 1. 05:42

 

1400년 전의 찬란한 유산을 찾아 떠난 발길 미륵사지에 머물다~

 

 

 

언젠가 TV에서 인기리에 방영 했었던 " 서동요 "가 생각 났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백제 무왕의 특이한 출생과 신분, 성장과정 , 그리고 치열했던 당시 왕위 계승 투쟁 등

백제의 30대 임금 무왕의 이야기를 극화 하였었지요~~

 

 

 

 

 

 

 

1400여년전 보석처럼 빛나는 애뜻한 사랑의 이야기가 있는 곳,

마한 백제의 향기를 듬뿍 담고있는 역사유적의 도시 익산의 미륵사지에서 발길을 멈춥니다.

 

 

 

익산미륵사지 (사적 제 150호 )

미륵사지는 백제 제30대 무왕(600~ 641년)이 세운 사찰로

익산의 주산인 미륵산(과거에는 용화산 )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무왕 조에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를 가던 중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 삼존이 출현하자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 후,

법당과 탑, 회랑 등을 각각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 라 하였다" 는 미륵사지 창건설화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 금당 ???

----  부처님을 모신 방  ---

 

 

 

 

연못가에 왕수양버드나무가 많은 이유는

예쁘게 보이는 효과도 있겠지만,

버드나무의 뿌리가 흙을 잡고 있어서

물 범람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심었다고 합니다.

 

 

동쪽과 서쪽에 2개의 연못을 보고 계십니다.

 

서쪽의 연못이 아주 아주 작게 보이는데요~~~

똑딱이의 한계랍니당~~  ㅠㅠㅠㅠ 

 

 

 

 동탑과 서탑은 각 27m씩으로 균형을 맞추어 세웠고,

가운데 목탑은 50m 로 그 위용을 드러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리를 향하여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면 신통불가사의 한 일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일행들은 시간 관계상 온 정성을 들여 한 번만 돌기로 하였는데

그래도 열심히 일곱 번을 도는 분도 계셨습니다.

 

 

 

 

미륵사지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백제 창건당시에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1기,

그리고 석탑의 북쪽과 동북쪽 건물들의 주춧돌과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의 정면 양쪽에 세워진

당간지주 1쌍(보물 236호)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남쪽에 2기의 당간지주(幢竿支柱)가 90m의 거리를 두고 서 있습니다.

 

 

????  당간지주 ????

-----  사찰입구에 세운 기둥입니다.

돌로된 두개의 당간 지주사이에 동(銅)이나 철(鐵)로 만든 기둥을 세우고

불가(佛家)를 상징하는 깃발인 당(幢)을 꽃아 신성한 지역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찰의 당은 그 자체가 위엄이고 당간의 규모가 사세(寺勢)를 드러냈기에

큰 사찰일수록 높이 세웠다 합니다  -------

 

 

 

 백제 시대의 석등으로 하대석(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입니다.

-----  부처님의 기운이 멀리 멀리 퍼져 나가라는 뜻에서

석등의 불을 밝힌다고 합니다 -----

 

 

석등의 상대석 입니다.

 

 

???  미륵부처를 모신이유 ???

힘든 백성을 생각하는  무왕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한 호국 사찰로써 성격을 띠고 세워졌던 것으로 여겨지고,

 백제가 망할 때 까지 왕실 사찰로 혹은 호국 사찰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찰이었답니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미륵사지 금당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는데요~

땅밑 3m 를 파서 토층을 만든 후

네모난 주춧돌을 얹고, 그 위에 원형 주춧돌을 얹은 다음

나무 바닥을 깔고 기둥을 올리는 방법을 사용한 곳으로

1~ 4m 기반공사 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회랑의 주춧돌 입니다.

주춧돌이 3열로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회랑이 2칸으로 설치되어 왕래에 간섭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3탑 3금당의 동양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의

현존하는 최대, 최고의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로 지정)은

본래 9층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6층까지 남아있었다.

 

풍화작용에 의해 탑이 기울어지고 있어 해체를 결정 하여서

 현재는 해체복원 중에 있으며

2009년 1월 14일 석탑 심주석 사리공에서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한 사리장엄이 발견 되었답니다.

 

 

 발견된 유물 등을 전시한 곳인데 다시 자세하게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복원이 되어 미륵사지의 위용을 드러내는 날

다시 방문하여 백제의 향기에 취해 보렵니다.